하루아침에 완전해 지지는 않습니다! "요나서 3:2~3"
2020-12-20 · 니느웨로 가서 심판의 복음을 외치라는 주님의 명령은 , 요나에게 죽기보다도 더 싫은 일이었습니다 . 죽기보다 더 싫은 일의 배후에는 깊은 내면의 상처와 그 상처에 도사린 우상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 요나는 죽어도 못하겠다고 버팁니다 . 그러나 실제 죽음의 상황에 처하는 것은 생각과 전혀 다른 것입니다 . 죽음의 상황을 통과하고 경험해 본 사람들은 죽어도 못한다는 말을 쉽게 하지 못합니다 . 요나는 차가운 바닷물에 떨어지는 순간부터 살려달라고 부르짖고 외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 그러나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소리조차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 그는 죽음의 절망 속에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 요나는 그 절박한 기도 가운데 자신의 우상을 발견하고 내려놓고 , 주님께 올려드린 서원을 기억하고 그것을 지키겠다고 결심하고 약속드립니다 . 헌신을 회복한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다시 같은 사명을 맡기십니다 . 하나님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 요나를 위해서입니다 . 요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 요나는 즉시 순종의 발걸음을 내디딥니다 . 1,000km 는 되었을 그 길을 어떻게 이동했을까요 ? 그 여정은 요나가 더 깊이 주님을 만나는 시간이 되었을 것입니다 . 요나는 니느웨에 도착하자마자 지체하지 않고 심판의 메세지를 외칩니다 . 심판의 메세지가 복음입니다 . 사랑하기 때문에 심판의 메세지를 주십니다 . 니느웨는 둘러보는데 만도 사흘길이나 되는 큰 성입니다 . 그러나 요나는 그저 하루 길 심판의 복음을 외쳤을 뿐입니다 . 요나는 회복되었으나 ,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 요나는 순종했으나 , 마음에서부터 나온 순종은 아니었습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니느웨에 놀라운 회개의 역사를 이루어 주십니다 . 첫째 , 우리는 상처투성이의 인생입니다 . 하루아침에 완전해지지 않습니다 . 완전한 치유는 이 땅에서는 결국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우리는 상처와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 우리의 부족한 순종에도 , 하나님께서는 크고 놀라운 역사를 펼치시며 , 그 가운데 우리를 더 깊이 만나 주시고 , 더 깊이 치유해 주십니다 . 하나님께서는 꼭 요나를 사용하지 않으셔도 되셨습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요나를 사용하신 것은 , 요나를 사랑하셔서 더 깊이 치유해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 둘째 , 우리 하나님은 용서하실 준비가 되어 있으신 하나님이십니다 . 어떤 죄인도 회개하면 용서해 주십니다 . 죄가 너무 커서 용서받지 못하는 죄인은 없습니다 . 자기 고집으로 회개하지 않아서 심판의 자리에 서게 될 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