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와 상처와 우상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요나서 4:1~2"

2020-12-27 · 드디어 요나가 하나님께 분노를 폭발합니다 . 지금까지 요나는 고집을 부리며 버틸지언정 , 하나님께 분노를 폭발시키며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토하지는 않았습니다 . 분노는 특별한 감정입니다 . 분노는 충족되지 않은 기대의 표현입니다 . 건강하지 못한 기대는 상처와 그 상처에 자리잡은 우상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 요나의 기대는 무엇이었으며 , 요나의 상처와 그 상처에 자리 잡은 우상은 무엇이었을까요 ? 정답은 없습니다 . 저는 그것이 결국 “ 민족주의 ” “ 선민사상 ” 으로 나타났다고 생각합니다 . 민족을 사랑하는 것은 아름답고 건강한 것이지만 , 민족주의가 되면 그것은 우상이 됩니다 . 민족주의의 뿌리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 네 편과 내 편을 철저하게 구별하는 편 가르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아가페 사랑의 반대쪽에 있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도 드디어 요나를 책망하십니다 . 하나님께서도 요나에게 사명을 주시고 , 풍랑과 큰 물고기는 준비하셨지만 , 요나를 책망하지는 않으셨습니다 . 책망을 들을 수 있는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이제 요나는 주님께 자신의 숨겨놓은 분노를 솔직하게 터트릴 수 있을 만큼 준비되었고 ,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책망하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이 솔직한 하나님과의 소통가운데 요나는 가장 깊이 숨겨진 우상을 발견하고 , 뿌리 뽑고 치유를 경험하는 단계로 나아갑니다 . 하나님께서는 요나로 하여금 니느웨 ( 앗시리아 ) 의 군대가 아니라 니느웨 사람들을 보게 하시고 , 거기에 더하여 작은 넝쿨 사건을 통하여 , 깨닫고 , 치유 받는 과정을 통과하게 하십니다 . 이 사건 후 요나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 틀림없는 것은 여전히 완성되지는 못한 채로 , 다음 단계로 더 깊이 성장해가는 과정을 걸어갔을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완전합니다 . 니느웨을 구원하시는 일에 굳이 요나를 사용하셔서 , 니느웨도 살리시고 요나도 치유하십니다 . 주님의 사랑과 지혜를 찬양합니다 . 저와 여러분에게도 , 하필이면 왜 저입니까 ? Why Me? 라고 비명을 지르고 싶은 상황에 부딪히거나 주님의 부르심을 만날 수 있습니다 . 완전하신 하나님을 믿어드리며 , 주님과 솔직한 소통의 시간을 추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