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이유는 한 가지가 아닙니다. "욥기 23:10~14"
2021-02-14 · 욥기에서 사탄은 “ 하나님께서 욥에게 복을 주시니까 욥이 하나님께 신실한 것이다 .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복을 주지 않으시면 욥은 하나님께 신실하지 않을 것이다 .” 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 사탄은 하나님을 , 인간을 “ 복 ” 으로 매수하는 존재로 비난하고 있는 것입니다 . 그리고 이것이 사실이라면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사랑의 관계가 아니라 “ 거래 ” 의 관계로 전락하게 됩니다 .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힘이 되어주시고 복을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을 더 사랑하게 됩니다 . 그것이 관계의 출발입니다 . 그러나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주님의 은총은 저와 여러분을 매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 그러나 하나님의 먼저 하신 사랑에 대한 인간의 응답은 처음 그 자리 “ 거래 관계 ” 에 머물 수도 있고 , 더 깊은 “ 진정한 사랑의 관계 ” 로 성장하고 자라갈 수도 있습니다 . 진정한 사랑의 관계는 나에게 “ 이익 ” 이 있을 때는 증명되지 않습니다 . 그 때는 누구나 다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 나에게 이익이 아니라 오히려 손해가 찾아올 그 때도 신실할 수 있는가 ? 바로 그 때 사랑의 관계가 증명되는 것입니다 . 사탄은 “ 사랑 ” 은 존재하지 않고 오직 “ 거래 ” 만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 거래 ” 를 넘어선 “ 사랑 ” 이 존재함을 욥을 통해서 그리고 “ 하나님 당신과 독생자 예수님이 함께 지신 ” 십자가를 통해서 증명해 주고 계신 것입니다 . 그렇다면 복에 대한 욥의 세 친구들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 “ 만약 욥이 신실하다면 하나님은 욥에게 복을 주실 것이다 . 욥이 하나님께 신실하지 않다면 하나님은 욥에게 복을 주지 않으실 것이다 . 그러므로 복 대신에 재앙을 받고 있는 욥의 상황은 욥이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 세 친구들의 주장은 사탄의 주장과 사실상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 오히려 사탄의 주장만도 못합니다 . 적어도 사탄의 주장에는 그래도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는데 , 세 친구들의 주장은 하나님에게서 주도권마저 빼앗아 버립니다 . 인간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태도가 “ 기계적으로 ” 달라집니다 . 하나님께서는 욥기를 통해서 ,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공식을 따르는 “ 기계적인 관계 ” 가 아니라 “ 사랑의 관계 ” 이고 “ 인격적인 관계 ” 임을 선포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 모든 고난이 그 사람의 죄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닙니다 . 고난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 고난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 내가 맺고 있는 관계가 어떤 관계인지는 “ 고난 ” 중에 드러나고 증명됩니다 . 나의 관계들은 기계적인 거래 관계입니까 ? 아니면 사랑의 관계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