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 왜 감사해야 할까요?

대양주 가사원장 강승찬 목사님의 칼럼을 함께 나눕니다 . 감사는 목회 현장에서 붙잡아야 할 중요한 단어 중 하나입니다 . 또한 우리의 가정과 일상을 행복하게 만드는 중요한 단어이기도 합니다 . 마음이 닫힌 VIP 들에게 마음을 열게하는 열쇠이기도 합니다 . 그래서 우리는 “지난주간에 있었던 감사한 일을 한 가지씩 나누겠습니다”하고 목장모임에서 나눔의 시간을 시작합니다 . 그런데 코로나 재난시대를 맞이하여 감사의 고백이 쉽지 않습니다 . 감사하고 싶은데 성도들이 직장을 잃기도 하고 , 대면예배를 드릴 수가 없는 상황이 되거나 시시각각 변하는 코로나 바이러스 재확산 소식과 정부의 방역 방침의 변화로 인해 스트레스가 더 심해져서 그런지 한 주간의 목회현장을 되돌아보면 감사의 흔적이 좀처럼 보이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감사라는 단어는 모두 알고 있지만 감사를 삶에 적용하며 산다는 것이 쉽지 않은 시대입니다 . 감사의 반대말이 무엇일까요 ? 불평일까요 ? 원망일까요 ? 아니면 무관심일까요 ? 기도의 자리에서 감사의 반대말은 ‘당연한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 식사대접을 받게 되면 누구나 대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고 말하면서 감사를 표현하지만 , 날마다 밥 해주는 아내에게 날마다 고맙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있을까요 ? 아내에게 진정으로 감사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내가 밥 해주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 목회현장에서도 마찬가지인것 같습니다 . 바쁜 일상속에서 물질과 시간을 희생해가면서 열심히 섬기고 사역하는 예절 바르고 부지런한 목자목녀의 섬김은 당연시 하고 , 성질 부리고 불성실한 사람이 목자목녀가 되면 변화의 폭이 크기 때문에 간증시키고 특별히 여기는 실수를 우리는 종종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 우리가 감사를 상실해 버린 이유는 ‘당연함’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 이 ‘당연함'을 '특별함’으로 바꾸어야 일상에서 감사하는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 당연함을 보석같은 특별함으로 바꾸기 위해서 우리는 항상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시선으로 삶을 관찰하는 습관을 가져야 함을 우리는 목회 현장에서 배우고 있습니다 . 다니엘의 삶은 일상의 당연함을 특별함으로 바꾼 삶이었습니다 . 당연함을 특별함으로 대할때 황홀함을 느낄 수가 있는 것 같습니다 . 바벨론의 국무총리가 된 다니엘은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 다락방에 들어가서 매일 반복하던 예루살렘을 향한 기도를 3 번씩 드렸는데 ( 단 6:10) 이 기도의 핵심은 '감사기도’였습니다 . 감사는 좋은 일이 있을 때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 다니엘처럼 내가 손해보고 힘든 상황에서도 해야만 하는 것이지요 ^^. 다시 말해서 감사를 나에게 영적으로 체질화 시켜야 합니다 . 감사를 다니엘처럼 인격적으로 체질화 시켜야 합니다 . 가정교회 3 축이 감사가 체질화 되도록 도와주는 것 같습니다 . 도무지 감사할 수 없는 성도들이 간증할 때 감사를 고백하는 것을 보면 여지없이 가정교회 3 축을 형성해서 인격의 변화가 조금씩 이뤄지고 있는 분들임을 목격하게 됩니다 . 감사가 체질화 된 다니엘은 이 감사기도 때문에 사자굴에 들어가는 죽음의 순간을 맞이 했지만 , 천사의 도움으로 사자굴에서 살아나는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 마찬가지로 , 가정교회 3 축과 4 기둥으로 무장된 목회자는 어떤 위기속에서도 다니엘처럼 기적을 경험하게 됨을 목회자 컨퍼런스에 참석하여 사례발표를 들을 때마다 느끼게 됩니다 . 결국 다니엘은 비난과 불평이 가득한 세상에서 감사를 통해 믿음을 지켰습니다 . 이처럼 감사는 우리의 믿음을 지키게 하는 파수꾼의 역할을 해냅니다 . 감사는 내 시선이 아닌 주님의 시선으로 인생의 시련을 바라보게 돕는다는 것을 기도할 때마다 느끼게 됩니다 . 불평과 원망은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못하는 불신앙에서 발생하지만 , 감사는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게 하고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고 성숙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 또한 감사는 우리를 영적으로 깨어있게 하여 분별력을 갖게 합니다 . 다니엘은 감사를 통해 늘 깨어 있었습니다 . 초대교회 교부인 크리소스톰은 “죄 중에 가장 큰 죄는 감사하지 못하는 죄” 라고 말했고 , 마르틴 루터는 “마귀는 항상 원망하고 불평할 뿐 , 마귀의 세계에는 절대 감사가 없다” 고 고백했습니다 . 결국 감사를 잃어버렸다는 것은 사단이 원하는 불평을 선택했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그 불평은 나를 영적으로 잠들게 하고 깨어있지 못하고 영적 게으름에 빠진 내 모습을 반영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큰 황소를 제물로 드리는 것보다 진정한 감사를 제물로 드리는 것이 하나님이 더 기뻐하신다 ( 시 69:30-31) 는 시편기자의 고백처럼 , 감사가 우리 인격에 체질화되어 당연함을 특별함으로 바꾸어 목장모임때마다 감사를 더 많이 고백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감사를 고백하는 성도들과 목장모임이 하나 둘 더 늘어간다면 코로나 재난 시대에 그 어떤 위기의 순간에도 믿음을 지키며 교회의 존재목적을 위해 헌신하는 성도들이 늘어날 것이고 , 가정교회는 건강하게 세워질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힘든 상황일수록 상황을 잘 분별하고 감사로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지혜를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 [ 국제가정교회사역원 홈페이지 , 원장코너 (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