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 너희는 바벨론에서 나오너라!!(이사야 48:20)

혹시 영상예배가 너무 익숙해져서 더 편해지지는 않으셨습니까 ? 5 월부터 새벽설교 본문을 큐티인 (QTin) 이라는 책을 따르고 있습니다 . 이전에 사용하던 큐티책도 좋았는데 굳이 바꾼 이유는 , 이전 책은 묵상간증이 주로 출판된 책에서 발췌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 큐티인에는 일반 성도님들의 진솔한 간증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 우리가 받은 말씀의 은혜가 오늘 우리의 삶에 현장에서 더 구체적으로 열매 맺기를 기대하는 마음입니다 . 그래서 갑자기 새벽 설교 본문이 신명기에서 이사야서로 바뀌었습니다 . 새벽설교를 준비하는 저에게도 이사야서 묵상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 저와 함께 큐티교재를 바꾸신 분들에게는 적지 않게 당혹스러운 시간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 신명기를 새벽에 묵상할 때도 같은 내용을 계속 반복되어서 저에게는 “ 하나님의 잔소리 ” 를 듣는 기분조차 들었는데 , 이사야서에도 또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 반복을 통해서만 우리의 삶이 변화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 신명기는 축복의 삶을 누리기 위해서 십계명에 순종할 것을 반복해서 말씀하셨다면 , 지금 우리가 묵상하는 이사야서 본문은 하나님께서 하실 “ 새 일 ” 을 반복해서 예고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 있는 이스라엘이 결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새 일을 , 그들이 상상조차 해 보지 못한 방식으로 이루시겠다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 그 새 일이 펼쳐질 때 ,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을 떠나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시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이렇게 반복해서 명하시는 것은 그들이 바벨론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귀환한다는 것이 그 만큼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 저는 미국에서 17 년을 살았습니다 . 처음에는 모든 면에서 불편했지만 , 17 년이란 세월이 미국생활에 익숙하게 만들어 주었고 , 그래서 나름 미국에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 그러나 혼자 시골에서 사시며 응급실에 자주 실려 가시는 어머님에 대한 죄송한 마음으로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에 대해서 마음을 열었지만 , 그것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 곰곰 생각해 보면 당시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것은 제가 미국에서 한국으로 귀환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 17 년의 세월이 아니라 70 년의 세월이 흐르고 난 뒤입니다 . 지금 한국은 어떤 면에서는 미국보다 삶의 질이 더 나을 수도 있지만 , 당시 바벨론은 세계 최고의 초강대국이었던 반면 예루살렘은 성벽도 성전도 무너진 위험한 땅이었습니다 . 미국에서 한국으로의 여정은 비행기타고 하루면 되는 안전하고 편안한 길이지만 ,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의 여정은 1000Km 가 넘는 거리를 수개월에 걸쳐서 걸어서 이동해야 하는 길이었고 , 중간 중간에 강도와 자연재해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위험하고 힘든 여정이었습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 바벨론에서 나오너라 .” “ 바벨론에서 떠나라 .” “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라 .” “ 성전을 재건하라 .” 명령하십니다 . 바벨론에서의 삶이 나름대로 많이 익숙해졌고 그런대로 살만했을 텐데도 목숨을 걸고 떠나라 명하시는 것입니다 . 왜 떠나라고 명하시는 것일까요 ? 지금 저와 여러분에게 익숙해 져버려 안주해 버리고 싶은 바벨론은 무엇이며 어디일까요 ? 우리가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향해서 떠나야할 우리의 예루살렘 , 우리의 성전 재건은 무엇일까요 ? 하나님께서 왜 그것을 명하고 계실까요 ? 각자 삶의 자리에서 기도하며 묵상하며 그 대답을 찾아가야 할 것입니다 . 혹시 집에서 영상예배 드리는 것이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이제는 오히려 나름대로 더 편해져버린 , 작은 “ 바벨론 ” 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훅 들어왔습니다 . 신앙으로 훈련된 분들에게는 영상예배가 나쁘지 않을 수 있어도 , 이 기간이 더 길어지면 믿음이 연약한 목장식구들의 신앙과 우리 자녀 세대의 신앙은 다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 영상예배에서 현장예배로 , 위험을 감수하고 희생을 담아 출발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 < 석목사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