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동성애 동성혼 , 인권의 문제가 아니라 창조질서의 문제입니다 . 저의 두 아이들은 미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 아이들이 학교에서 동성애 커밍아웃을 한 친구들 이야기를 하면서 크리스챤은 어떤 입장을 가져야하는 지 물어왔을 때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 미국의 일반적인 분위기가 동성애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인권을 옹호하는 사람들이고 , 반대하는 사람들은 무식하고 사랑이 없고 편협한 사람들로 인식되어 있는 분위기였고 , 아이들이 동성애는 죄라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견지하면 ,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거나 혹은 법적으로도 구체적인 피해를 입을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 제가 미국에서 겪었던 바로 그 일을 이제 한국에서도 피할 수 없는 위기 상황이 닥쳐오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 그러나 아직 완전히 늦지는 않았습니다 . 동성애와 동성혼을 합법화 시키려는 분들은 이것을 “ 인권 ” 의 문제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 동성애를 인권의 문제로 받아들이면 , 동성애와 동성혼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의 인권을 소중히 여기는 의식 있는 지성인이 되고 , 이에 반대하는 기독교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기득권이나 지키려는 무식한 수구보수 세력으로 비치기 쉽습니다 . 기독교가 수세로 몰리는 것은 지금까지 교회가 약한 자를 돌보라는 주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억압하는 자들의 편에 선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흑인 인권 운동이 일어났을 때에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인용하여 인종차별을 지지했습니다 . 여성 인권 운동이 일어났을 때에도 많은 크리스천들이 성경을 인용하여 반대했습니다 . 교회가 약자 편에 서지 않았기 때문에 , 동성애자를 핍박받는 약자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기독교에 대항하여 그들 편에 서는 것이 정의를 실천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 성경은 동성애를 분명히 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레 18:22, 롬 1:26-27). 그러나 동성애 지지자들은 이 구절이 폭력적인 동성애를 금하는 것이지 ,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의 동성애는 허락되어야한다고 주장합니다 . 성경을 문자대로 해석한다면 , 구약에서 부모 말을 듣지 않는 자녀들을 돌로 쳐 죽이라고 했으니까 , 지금도 돌로 쳐 죽여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합니다 ( 신 21:18-21). 그러나 성경에는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 있고 ,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 동성애 문제는 그런 차원을 넘어 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어긋납니다 .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남성과 여성으로 만드셨습니다 ( 창 1:27). 남녀가 서로의 부족을 보완하도록 한 몸이 되어 부부가 되게 하셨고 ( 창 2:24), 이렇게 형성된 인간사회의 기초 공동체를 가정이라고 부릅니다 . 그러므로 동성애나 동성결혼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입니다 . 작년 (2018) 8 월 7 일에 국무회의에서 통과된 제 3 차 국가인권정책기본 계획은 “ 성평등 ” 정책을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이 인권계획의 핵심쟁점은 세 가지인데 “ 국민 ” 을 “ 사람 ” 으로 , “ 양성평등 ” 을 “ 성평등 ” 으로 바꾸려는 시도와 , 이에 근거해서 “ 차별금지 ” 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 양성평등을 글자하나 빼고 성평등이라고 하는 것이 무슨 큰 문제가 되겠는가 생각할 수 있지만 , 양성평등과 성평등은 하늘과 땅차이입니다 . 양성평등은 인간은 남성과 여성 , 두 개의 성 ( 양성 ) 으로 구별되며 , 남녀는 평등하여 차별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 그런데 이것을 “ 성 ” 평등으로 바꾸려는 이유는 , 남성과 여성 외에 다른 성적인 정체성을 인정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려는 시도입니다 . 동성애와 동성혼을 합법화 시키는 과정에 절대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사전 포석이라고 할 수 있으며 , 이를 통해 헌법까지 같은 방향으로 개정하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 이 같은 시대상황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으며 , 무엇을 해야 하며 ,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 비둘기처럼 순결하게 그러나 뱀처럼 지혜롭게 그 대처 방안을 찾아 실천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 석목사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