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6월4일]에스더 4:1-16 참 믿음이 필요한 때입니다

역사를 보면 교회 문화와 세상 문화는 나란히 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세상에 “교육으로 사람은 변화된다”는 신조가 있을 때에 교회에는 “제자훈련”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치유에 대한 관심이 많을 때에 교회에는 “내적치유”가, 그리고 세상에 포스트모더니즘이 유행할 때에 교회에는 “영성운동”이 주류를 이루는 듯하였습니다. 근래에 소비자 중심의 문화가 생기면서 교회에는 “열린 예배”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사용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연합과 일치 운동이 일어나면서 종교인들 사이에도 연합과 일치를 이루자며 복음을 흐리게 하는 일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을 보게 됩니다. 지금이야말로 참 믿음이 필요한 때입니다. 복음에 대한 열정과 주님께 대한 헌신이, 그리고 영생의 소망에 대한 믿음이 필요한 때입니다. 1. 구원 얻을 믿음 유다인들을 지배하고 있는 바사의 하만은 지위가 높아질 대로 높아져서 매우 교만해 있었습니다. 그는 모르드개가 꿇어 절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다인들을 모두 미워하여 왕에게 모든 유다인들을 멸할 수 있도록 허락을 얻었습니다. 이 사실을 안 모르드개는 그 옷을 찢고 대성통곡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왕비가 된 에스더에게 알리고 왕에게 나아가 민족을 위하여 간절히 구하라고 하였습니다. 복음에 대한 참 믿음은,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고 영생을 얻게 된다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반면에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는 둘째 사망에 이른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입니다. 2. 헌신할 수 있는 믿음 모르드개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지만 에스더는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왕의 부름이 없이는 왕의 내실까지 들어갈 수 없으며 만약 그것을 어기는 경우에는 죽임을 면치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왕이 자기를 한 달 이상 부르지 않았기 때문에 왕이 자신을 총애하는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모르드개는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든지 유다인은 구원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이 끔찍한 재앙을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에스더와 그 집안은 멸망을 벗어나지 못할 것을 명심하게 하였습니다. 에스더는 자신과 유다인이 처한 상황을 올바로 이해하고 결심을 하였습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이것은 무모한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바른 믿음입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헌신을 할 수 있는 믿음이 필요한 때입니다. 3. 영생의 소망에 대한 믿음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모르드개나 에스더가 기도했다는 말을 찾아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에스더서는 하나님의 섭리를 가르쳐 줍니다. ‘섭리’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일어날 일을 미리 아시고 계속 그들을 돌보신다는 뜻입니다. 섭리는 하나님의 공급하심, 보호하심, 그리고 때로는 인도를 원하지 않더라도 인도해 주심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 상황에서는 ‘가만히 앉아서 하만에게 죽는 것보다는 왕의 허락 없이 안뜰에 들어갔다가 죽는 것이 낫다’는 의미에서,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이다.” 말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그러한 상황이 주어진다면, 우리는 영생의 소망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참 믿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