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4월16일]고전15:50-58 죽음 없이는 부활도 없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잘 났다고 하더라도 할 수 없는 한 가지, 막을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죽음입니다. 철학자이자 소설가였던 까뮈는 인간의 죽음을 궁극적 부조리 라고 명했습니다. 극복할 수 없는 한계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는 분이십니다. 인간은 인간을 죽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이 죽인 것을 다시 살리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부활 주일은 인간이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이 하신 것에 대해 찬양하고 즐거워하는 날입니다. 1.부활의 전제는 죽음입니다. 부활은 죽은 자가 살아났을 때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부활했다는 것은 전에 죽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죽었다는 것을 분명히 증거합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거짓이라 말합니다. 회교도들도 그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죽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부활을 부정하려는 술책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지만 분명히 죽으셨습니다. 안 죽으실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죽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죽음의 배후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린다고 했습니다. 친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한 마디로 사랑의 결정체입니다. 2.죽음은 죄의 형벌입니다.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단언합니다. 죄를 지은 자는 예외 없이 죽음의 형벌을 면할 수 없습니다. 불행하게도 죄를 짓지 아니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성경은 증거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습니다. 죄의 영향아래 있는 우리의 육신은 죽습니다. 누군가 제게 죽는 것이 두렵냐고 말한다면 저는 주저 없이 두렵다고 말합니다. 예수님도 죽음 앞에서 엄청난 번뇌와 고민 가운데 기도하셨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죽음도 결국은 죄의 삯을 지불하는 죽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죄 없으신 그 분께서 죄의 삯을 지불키 위해서 죽으신 죽음이야말로 공포와 전율의 극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고결한 사랑이 죽음의 공포를 이기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죽음의 형벌을 받으셨던 것입니다. 3.부활은 죄 씻음과 영생에 대한 약속이며 증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죄의 삯을 지불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면 우리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사망이 쏘는 것은 죄입니다. 사망이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려면 사망의 권세를 이겨야 합니다. 사망의 권세를 이겼다는 것은 죄를 완전히 사함 받았다는 증거가 됩니다. 사망을 이긴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부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했다는 것은 우리의 죄가 완전히 사함 받았다는 것이고 우리가 다시는 죄로 말미암아 정죄 받을 일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의 메시지입니다. 예수 다시 사셨습니다. 예수님을 의지하고 그의 부활의 권능을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상속받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그 일에 대한 명백한 살아있는 증인들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이 땅에서 남아 있는 한 우리는 부활의 증인으로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서 전도자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