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2월26일]사사기17:6 각각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어도

사사기의 주제는 “각각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자유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백성들은 하나님을 떠나 그들 주위에 있는 민족들이 섬기는 잡신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참신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라는 진리를 만방에 증거하도록 하나님께서 그들을 택하셨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유를 누린 것이 아니라, 실상은 무질서로 인해 몰락을 맞이한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책임이 따르지 않는 자유를 ‘방종’이라고 정의합니다. 우리들도 주님을 알기 전에는 “각각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던”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주님을 만난 후에 변화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만나 바울이 그리했던 것처럼, 우리는 먼저 “주여 뉘시니이까?” 하며 주님을 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하는 자세로 주님의 뜻을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1. 각각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어도 여호수아가 죽은 후 약속된 땅 중 아직도 정복해야 할 곳이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먼저 하나님께 질문하였습니다. 그들의 시작은 좋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처음 명하신 대로 그 땅 안에 있는 적들을 내쫓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우상을 숭배했으며, 그들의 생활은 심히 타락했습니다. 그들은 사악한 민족과 혼합되지 말고 이방민족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계속 사랑하셨습니다. 패역한 백성에 대한 어리석은 관용이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에게 얼마나 큰 불행을 가져왔는지를 우리는 알고 주의해야 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로 세상에 물들지 아니하고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주여 뉘시니이까?” 이스라엘 백성은 시리아 국가들 사이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 다른 민족과 평화롭게 지내려고 지나치게 서둘렀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상황을 안전하게 하기 위하여 이방 민족들과 결혼하고 그들과 거래를 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방 민족의 종교와 악습을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때마다 이방 민족들에게 압제를 받게 하셨습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사사기에는 “이스라엘의 범죄, 그들이 고통 가운데 빠짐, 하나님께 간구함, 하나님께서 구원하심”의 사이클이 반복됩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하나님을 섬기다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주여 뉘시니이까?” 질문했던 것처럼, 우리도 순간순간 주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확인해야 합니다. 아침 경건의 시간에 “주님이 누구이신가?”를 확인하십시오. 3.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고통 중에서 간구할 때마다 사사들을 보내주셔서 그 땅에 평화가 있게 하셨습니다. 옷니엘, 에훗, 드보라, 기드온, 입다, 삼손 등이 바로 그 사사들이었습니다. 사사들이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은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우상을 멀리 치워버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며 그들로 하여금 소명감을 갖도록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일들이 실행되었을 때 승리는 그들의 것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거나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주님을 만난 후에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하고 질문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고자 하는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