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옵시고
추 석 주간입니다. 한 해의 농작물을 추수하며 기쁨을 나누고 풍작을 이루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시간들입니다. 추석을 불과 몇 주 앞둔 시점에 큰 태풍 세 개가 연이어 한국 땅을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한 해 동안의 땀 흘리며 수고했던 모든 노력들이 그야말로 하룻 밤 사이 물 거품이 된 것입니다. 무엇을 우리가 교훈 받습니까? 농사는 사람이 짓지만 그 수확을 거두는 문제는 사람의 소관이 아님을 교훈 받습니다. 나의 의지와 노력으로 거둘 수 없는 결실이라면 결국 우리가 구해야 할 양식이 근본적으로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세 부분으로 나누어 오늘 본문을 깊이 생각해 봅시다. 1. 오늘날 우리에게. ‘우리’라는 단어는 교회에서, 그리고 한국문화에서 매우 익숙한 표현입니다. 문제는 이 표현이 매우 모순되게 사용되어 진다는 것입니다. 말은 우리라고 표현하지만 개념은 철저하게 개인화되었고 사유화되었습니다. 우리의 것이 없어지고 내 것, 네 것만 존재합니다. 기쁨과 슬픔 고난과 고통이 한 사람에게 일어난 것이라도 우리 속에서는 모두의 것이었지만 언제부턴가 당사자의 것이 되고 당사자가 아닌 사람에게는 우리 속에 같이 있어도 상관 없는 일처럼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늘 기도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라는 표현을 사용하십니다. 우리가 교회라면 그 안에서는 너와 나의 구분이 없다는 것이고 우리, 모두의 개념만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기쁨과 슬픔, 고난과 고통, 감사와 축하...... 이 모든 것들은 개인의 것이 아닌 우리모두가 함께 감당하고 함께 나누어야 할 몫이라는 것입니다. 2. 필요한 (일용할) 일용할 이란 표현은 ‘날마다 사용할’, 혹은 ‘매일 매일 필요한’ 이란 의미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이 단어는 예수님에 의해 한 번 사용된 표현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를 분해해 보면 위에(에피)라는 전치사와 존재하는(우시오스)이라는 동사가 합해서 만들어진 용어인데 단어적으로만 보면 그 뜻은 위에 존재하는 양식을 주옵시고 라는 해석도 가능한 것입니다. 문맥을 통해서 보자면 이 단어는 매일 필요한 양식을 구하는 의미보다는 위에 있는 양식을 구하는 의미가 더 적절해 보입니다. 다시 말해 에피우시온이란 단어는 하늘에 있는 양식을 구하라는 의미가 더 적절한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물리적인 양식을 구하는 기도였다면 광야에서 돌로 떡 덩이를 만들라는 마귀의 시험 앞에서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치 말라는 말씀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3. 양식 양식이란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서 먹어야 하는 필수품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생명을 위해서 먹을 땅 위의 양식을 구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영생을 위하여 하늘에 있는 양식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목숨을 유지하는 양식은 파워를 주지만 영생을 유지하는 하늘의 양식은 능력을 주십니다. 그것을 성경은 권능 즉, 듀나미스라 말하는 것입니다. 하늘의 양식을 먹게 되면 우리의 관심은 하나님의 나라로 향하게 되는 것이고 땅의 양식을 먹으면 우리의 관심이 땅의 것을 향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땅의 것을 무가치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삶의 우선 순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늘 양식을 먹지 않고 땅의 양식만을 추구하는 것은 항상 고민하고 염려하는 삶이지만 하늘 양식을 먼저 생각하면 우리의 모든 관심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성경은 목숨을 위해 구하는 이 모든 것은 더해줄 것이라 약속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모이는 곳에 하늘 양식을 구하는 변화와 기도와 소망이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