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6:1-13) 진정한 예배와 경건

예 배에 대해 웃지 못 할 예화가 있습니다 . 기독교 가정이 있었습니다 . 매주일 아침이 되면 , 남편은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 우리 둘 중에 오늘은 당신이 대표로 예배 보러 가구려 .” 그런데 어느 날 밤 남편이 꿈을 꾸었습니다 . 그는 자기 아내와 함께 죽어 하늘나라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 그런데 문지기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 “ 당신들은 부부지요 ?” 둘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 그러자 문지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 “ 그렇다면 잘 되었소 . 당신들 둘 중에 대표로 부인만 이리로 들어오십시오 .” 진정한 예배란 과연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해주는 이야기입니다 .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십자가 죽음을 예고하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기 전에 반드시 통과해야 할 관문이 있었습니다 . 바로 예수님께서 죽으시는 일이었습니다 . 예수님의 재림이 있기 전에 반드시 승천이 , 예수님의 승천이 있기 전에 반드시 부활이 , 예수님의 부활의 영광이 있기 전에 반드시 십자가 죽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 예수님은 자신이 이틀 후에 십자가에 달릴 것을 아셨습니다 . 예수님의 사역의 절정은 십자가에서 죽는 일이었습니다 .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목적도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 예수님은 자신이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을 계속 예고하셨고 ,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네 번째로 죽음을 예고하시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 그만큼 예수님은 인생의 목적을 분명히 하고 사셨고 , 그 때문에 조금도 흔들림 없이 죽음을 향해 다가가셨습니다 . 예수님을 대적하는 무리들 그런데 이스라엘을 구원해주실 메시아를 기다리는 일에 앞장을 섰던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은 자기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메시아를 잡아서 죽이는 일에 앞장을 서고 있었습니다 . 그들은 정당한 방법으로는 아무리 머리를 쓰고 애를 써도 예수님을 잡을 길이 없었습니다 . 그들이 가장 문제를 삼은 것은 자기들의 권세나 지위보다 예수님이 높아질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었고 ,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으며 잔치에서는 윗자리에 앉고 ,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에 앉으며 , 장터에서 인사를 받고 선생님이라 불리는 것이 주관심사였습니다 . 그러니 예수님을 아무 근거 없이 잡았다가는 백성 가운데 소동이 일어나고 자기들의 입장이 난처해지면 곤란하기 때문에 ,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명절에는 하지 말자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 진정한 예배와 경건 하루는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부정하다고 피하는 나병환자의 집에 계셨습니다 . 그때에 마리아가 매우 값진 향유 한 옥합을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 마리아의 마음속에는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아울러 죽은 자를 살리시는 능력이 있는 예수님에 대한 경외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무엇을 드려도 아깝지 않습니다 . 존경하는 분을 위해서는 무엇이 드려져도 아깝지 않습니다 . 사랑하고 존경하는 예수님을 위해서는 일 년 연봉에 해당하는 향유가 아니라 , 더 드릴 것이 없어서 안타까웠을 것입니다 . 저는 경건이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주님을 사랑하고 존경하여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고 싶고 , 조금이라도 더 드리고 싶은 열망 , 이것이 참 경건입니다 .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예배하는 태도입니다 . 예수님을 사랑하고 존경하여 아낌없이 드릴 수 있는 자세 , 이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 목회서신 : 목회자를 위한 가정교회 세미나를 앞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