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앙의 세 모습(무지/불신/오해)
사람들과 서로 관계가 좋지 않았을 때를 생각해 보면, 대개 서로의 마음이나 상황에 대한 무지가 발단이 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서로를 믿어주지 못하고 불신을 하게 됩니다. 결국은 선입관을 가지고 상대방이 하는 일마다 오해를 하는 결과를 낳을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들이 바라던 모습과 다른 모습의 삶을 사시는 예수님에 대한 무지와 불신으로 말미암아 오해를 반복했습니다. 성경에 예언된 대로 메시아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왕으로서의 권능을 계속 보여주셨건만, 그들은 “너희는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기 때문에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1. 죄 사하는 권세에 대하여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나병환자를 고치시는 것을 보았고, 백부장의 종을 중풍에서 낫게 하시는 것도 보았습니다.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셔서 잔잔케 하시는 모습도 보았고, 귀신들린 사람 둘을 고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시고, 죽음의 권세까지도 이기고 부활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께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것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눈에 보이도록 중풍병 환자가 자기가 누웠던 침상을 거두어 가지고 걸어가게 하시는 예수님의 능력을 보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도 여전히 믿지 않았습니다. 2. 세리와 죄인들과 식사하시는 것에 대하여 동족에게서 세금을 징수하여 로마정부에 바치는 세리였던 마태가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세리와 죄인이 예수님과 그 제자들과 자리를 같이 하였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세리와 죄인과 어울려서 음식을 드시는 예수님을 비난했습니다. 율법에 있는 대로 희생제물은 바치면서 정작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자비의 마음을 이해하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는 쉬운 예로, 예수님은 그들의 무지와 불신과 그로 말미암은 오해의 마음을 지적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용납하시는 주님의 온유하신 성품을 그들을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3. 금식하지 않는 제자들에게 대하여 세례 요한이나 그의 제자들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 나라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에 금식을 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주님이나 그분을 모시고 있는 제자들이 금식하는 것을 적합하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신랑과 함께 먹으며 즐거워해야 할 혼인식에서 애곡을 하거나 금식하는 것이 마땅치 않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전통적인 유전에 굳어져 자기들의 생각에 매인 사람들은, 자기들이 기다리던 하나님 나라의 왕도 맞이하지 못하고 율법의 진정한 의미도 어기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이미 단단하게 굳어져서 탄력이 없어진 낡은 가죽부대와 같은 그들의 사고구조 속에는 주님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는 무지는 불신을 낳고, 불신은 오해를 낳아서 하나님을 거부하고 진리를 배척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을 열고, 깨끗한 마음으로 주를 부르는 성도들에게 마음을 열 때에, 주님은 날마다 새로운 은혜로 충만하게 해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