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1:28~44) 제한된 믿음, 무한한 능력
성 경에는 제한된 인간의 모습이 많이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누구든지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하셨을 때, 그의 대답은 “사람이 늙었는데,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야 없지 않습니까?”였습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는 것만을 태어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얼마 전, 아인슈타인의 말이라며 “나는 자신의 창조물을 심판한다는 신을 상상할 수가 없다.”는 말을 버스 옆에 붙이고 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반기독교시민운동연합이 기독교 비판 버스광고를 한 것입니다. 세상이 심판받는 것을 원하시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게 하신 것을 그들은 바로 알지 못한 것입니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1. 제한된 믿음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 되는 날,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집을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을 맞으러 나간 마리아는 예수님 앞에 엎드려서, “주님, 주님이 여기에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먼저 맞이했던 마르다가 했던 말과 똑같은 말이었습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다.’라는 생각에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네 오라버니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말씀하시자,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 때에 그가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은 내가 압니다.” 대답하였습니다. 마르다는 안다고 말했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바로 이해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죽기 전에는 무엇인가 해볼 수 있겠지만, 사람이 죽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제한된 생각입니다. 우리가 주님에 대해 가지고 있는 믿음도 매우 제한된 믿음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2. 함께 울 수 있는 마음 예수님께서는 마리아가 우는 것과, 함께 따라온 유대 사람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마음이 비통하여 괴로워하셨습니다. 나사로를 어디에 두었느냐고 묻고 무덤으로 따라가시면서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잠시 후 나사로를 살릴 것이지만, 죽은 나사로로 인하여 슬퍼하는 사람들과 함께 우실 수 있는 마음을 가지신 예수님이 저는 좋습니다. 사람들은 그 와중에도 “보시오, 그가 얼마나 나사로를 사랑하였는가!” 말하기도 하고,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하신 분이, 이 사람을 죽지 않게 하실 수 없었단 말이오?” 하며 빈정거리기도 하였습니다. 기뻐하는 사람을 보면 질투를 하지는 않습니까? 우는 사람을 보면, 나는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았다고 안도의 숨을 내쉬지는 않습니까?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울 줄 아는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갑시다. 3. 무한한 능력 예수님께서 우시는 모습을 본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얼마나 나사로를 사랑하셨는지를 느끼며 감동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하신 분이, 이 사람을 죽지 않게 하실 수 없었단 말이오?” 하며 빈정대는 소리를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시기 위하여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실 때에, 마르다는 “주님, 죽은 지가 나흘이나 되어서, 벌써 냄새가 납니다.”며 소용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불평, 불만, 불신으로 가득 찬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제한된 생각, 제한된 믿음이 또한 사람의 한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둘러선 무리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죽은 지 오래 되어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제한된 우리의 믿음으로 예수님을 제한하지 맙시다. 무한한 예수님의 능력을 믿고 우리의 믿음을 확장해 나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