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아 2:1-21, 6:22-25) 가정교회가 방주가 되게 하라!
오늘 읽은 성경 본문은 이스라엘이 여리고 성과의 전쟁을 앞두고 정탐꾼을 보낸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전쟁은 내용상으로 보면 허무맹랑(虛無孟浪)해 보이지만 하나님의 구속 사건과 관련지어 볼 때는 아주 중대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라합이라는 한 부정한 여인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이 사건의 교훈을 통해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고 계시는가를 함께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1.열린 구원(2:1) 우리는 본문에 나오는 사건 가운데 창녀라고 표현된 라합이라는 사람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몸을 팔아 돈을 버는 여인들에 대한 경시와 천시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특별히 성경에는 창녀를 세리와 함께 죄인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자주 언급함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러한 죄인의 상징처럼 여겼던 창녀의 집에 여호수아가 보낸 정탐꾼이 찾아 왔다는 놀라운 기사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구원입니다. 이스라엘의 정탐꾼은 그들을 받아들이는 자들에게는 구원의 메시지이지만 그들을 거부하는 자들에게는 사망의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이미 출애굽의 유월절 사건을 통해서 이 사실을 명백하게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은 비록 극한 죄인이더라도 누구에게나 구원받을 기회는 열려 있다는 사실을 증거 하여 주는 것입니다. 2.필요한 결단(2:2-20) 구원의 길이 열려 있다고 해서 모두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의 길은 모두에게 개방되어 있지만 그 내용을 들었다면 결정을 내리는 반응을 해야 합니다. 라합에게 있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소식은 새로운 희망이며, 자신을 노예의 신분에서 구출해줄 복음이었습니다. 라합은 출애굽 사건을 이미 들었습니다. 출애굽의 사건은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자유인으로 구출해준 복음의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스라엘의 정탐군이 라합의 집에 온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제 라합은 이 기회를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거부하느냐의 선택의 기로에 섰습니다. 많은 대가가 요구됩니다. 그러나 라합은 밭에 감추인 보화를 찾은 사람처럼 자기의 모든 것을 바꾸어 그 복음을 선택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라합은 일생일대의 가장 큰 모험을 감행하게 되었습니다. 3.안전한 방주(2:21/6:25) 복음을 받아들인 라합의 집은 이제 죄인 중에서도 나쁜 죄인인 창기가 거하는 집이 아닙니다. 창기인 라합이 있지만 그 큰 여리고 성에서 가장 안전한 구원의 처소가 되었습니다. 마치 노아 홍수 시대에 사람들이 종말이 없을 것이라 믿고 먹고 마시고 장가가던 그 죄악의 현장 속에 세워진 방주와 같은 구원의 처소가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거하는 처소가 죄인의 집에서 구원의 방주가 되어야 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가정 교회를 이루고 있는 사랑하는 다운 성도님들의 가정은 여리고 성의 방주가 되었던 라합의 가정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몸 담고 있는 이 땅은 어쩌면 노아 시대의 현장이요, 소돔과 고모라의 현장이요, 그 큰 성 니느웨의 모습이며 나아가서는 여리고 성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곳에도 심판이 비켜간 복음과 방주가 있었듯이 바로 여러분의 가정이 홍색 줄이 메어 달린 심판날의 방주가 되어야 합니다. 그곳을 찾아가면 복음이 있고, 그 안에는 결단의 초청이 있고, 그 안에 있으면 누구라도 안전한 그런 방주가 되도록 여러분의 가정 교회를 만들어 가시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