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음 4:1~10) 내게도 다가오셨던 예수님

자주 듣는 말 중에 ‘내리사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손윗사람이 손아랫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말하고, 특히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이르는 말입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사랑하기는 하여도,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사랑하기는 좀처럼 어렵다는 속담으로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도 꼭 같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찾기 전에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다가오셨습니다. 요한도 “사랑은 이 사실에 있으니,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을 보내어 우리의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요일 4:10)라고 표현했습니다. 1. 구원에 대한 관심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사람들보다 많아지자 이것이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트집거리가 되었던 모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는 것이 나을 것으로 판단하셨을 것입니다. 사마리아를 거쳐서 가시게 된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사람들의 구원에 대해 가지셨던 관심을, 본문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찾아오셨을 때를 회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주님을 더 찾으셨습니까, 주님께서 여러분을 더 찾으셨습니까? 저는 저의 어머니 돈을 떼어먹은 교인 때문에, 기독교에 대해 심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제 마음속에 지속적으로 인생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도록 만드셨습니다. 결국은 제 필요를 채울 수 있도록 크리스천 친구 하나를 제게 붙여주셨고, 그를 통해 교회에 첫 발길을 내딛도록 하셨습니다. 2. 가까이 다가오심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증오하고 멸시하며 그들과의 접촉을 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물가에 앉으셨던 예수님은 물을 길러오는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자가 “선생님은 유대 사람인데 어떻게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질문을 할 정도로 이것은 어색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수가 성 여인과 사마리아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기꺼이 그런 장벽들을 허물어 버리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가까이 다가오셨을 때를 기억해 보십시오. 그리스도인들을 증오하고 빈정거리고 있을 때, 주님께서는 제게 다가오셨습니다. 친구를 따라 성가대에 앉아있도록 하셨고, 교회 대학부에 들어가게 하셨으며, 믿지도 않는 상태에서 수련회까지 따라가 끝내는 복음을 대면하도록 하셨고, 주님을 영접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3. 분명한 전달 주님께서는 수가 성 여인에게 자신이 누구이신지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인은 마셔도 또 목이 마를 우물물을 길러 왔지만,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다시 목마르지 않을 ‘생수’를 주실 분이십니다. 자신의 처지를 부끄럽게 여기고 사람들이 나오지 않는 대낮을 이용하여 물을 길러 온 여인을 구원하는 일을, 주님은 ‘하나님의 뜻’(34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에겐가 관심을 가지고, 가까이 다가가, 분명하게 전달을 해주면 그곳에서 하나님의 역사는 일어납니다. 주님을 모르고 복음을 몰라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찾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해야 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고통을 받기까지 하셨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목말라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가까이 다가가 복음을 분명하게 전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