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8월9일]행 26:24-32 확신 있는 복음 선포

행 26:24-32 찬송가 499장(흑암에 사는 백성들을 보라) 바울이 복음을 전하던 당시에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로마는 총독을 세워서 점령지를 관리하게 하고, 분봉왕을 세워 그 땅들을 다스리도록 하였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베스도는 벨릭스의 뒤를 이어 유대 총독으로 부임한 사람이며, 아그립바는 유대인의 풍습이나 종교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분봉왕이었습니다. 바울이 황제에게 상소를 했으므로 베스도는 바울의 죄목에 대해 명시를 해야 하는데, 바울에게 죄가 없었기 때문에 입장이 난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베스도가 아그립바 왕과 여러 사람 앞에서 바울의 소송 건에 대해 설명을 하고 황제에게 올릴 보고서의 내용을 얻으려고 한 것입니다. 그 앞에서 확신 있게 복음을 선포하는 바울의 멋있는 모습을 보십시오. 1. 무언가 구별된 삶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을 변호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바울은, “특히 임금님께서 유대 사람의 풍속과 쟁점들을 모두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다행으로 생각한다며 예의바르게 이야기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자신의 삶, 예수님을 만난 과정, 그 후에 변화된 삶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당하셔야 한다는 것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먼저 부활하신 분이 되셔서,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 사람들에게 빛을 선포하시리라는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이성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부활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이라고 확신 있게 선포하는 바울을, 베스도는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소금은 맛을 내고 부패를 막을 뿐 아니라, 갈증이 생기게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제자들에게는 영적 갈증을 일으킬 수 있는 무언가 구별된 메시지와 삶이 있어야 합니다. 2. 불쌍히 여길 줄 아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고, 세상의 가치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영적인 이야기를 들은 베스도는 바울에게 “바울아, 네가 미쳤구나.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하였구나.”하고 말했습니다. 한낱 죄수에 불과했던 바울이었지만, 유대 땅을 관리하기 위해 내려온 로마 총독이나 분봉왕 아그립바 모두, 바울의 눈에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야할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바울의 말 그대로, 어느 한 구석에서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세계 모든 사람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때를 분기점으로 하여 BC 몇 년, AD 몇 년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역사적 사실이 없었다면 이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세상에서 어떤 위치에 있든지, 예수님을 아직 모르는 사람들을 구원받아야 할 사람들로 불쌍히 여길 줄 아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3. 자신의 삶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야 합니다. 로마 총독과 분봉왕 앞에 세상적으로는 초라하게 결박을 당한 죄수의 몸이었지만, 바울은 당당했습니다. “나는 임금님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고 있는 모든 사람이, 이렇게 결박을 당한 것 외에는, 꼭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빕니다.” 자신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고, 그곳으로부터 구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소망이 없이는 결코 할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신분에 대한 자부심이 있으면, 우리는 확신 있게 복음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자신의 삶에 대한 자부심이 있으면, 우리는 당당하게 복음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능통한 아볼로에게 하나님의 도를 가르쳤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했던 빌립처럼, 자신의 삶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확신 있게 복음을 선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