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2월22일]마가복음 15:42-47 지금부터는
누구나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면, 모두 후회의 감정을 가집니다. 후회는 단지 이전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반성과 회개에는 잘못을 뉘우치고 고치는 과정이 따라야 합니다. 더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죄라고 하시는 것에 대해 동의하고, 그로부터 벗어나려는 뜻을 세워 새로운 생활로 들어가는 일이 따라야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아리마대 요셉이 후회가 아닌 회개의 좋은 예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이나 유대 사람이 무서워서 그 사실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리하였으나 ‘지금은’ 더 이상 그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대담하게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청하여 삼베로 싸서 자기의 새 무덤에 모셨습니다. 1. 지금까지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날은 안식일 전날인 금요일이었습니다. 유대 사람들은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그냥 두지 않으려고 예수님과 두 강도의 시체를 치워달라고 빌라도에게 요청을 하였습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님의 시신을 거두게 하여 달라고 대담하게 빌라도에게 청하였습니다. 본문의 사건은 모든 복음서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의 제자였는데, 유대 사람들이 무서워서 그것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전에 예수님을 밤중에 찾아갔던 니고데모도 몰약에 침향을 섞은 것을 가지고 왔습니다. 여러분도 아리마대 요셉이나 니고데모처럼 “지금까지는” 사람들을 의식하여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여러분의 신앙을 많은 사람 앞에 선언해야 할 때입니다. 2. 그러나 지금은 아리마대 요셉은 ‘명망 있는 의회 의원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70명으로 구성된 산헤드린 공의회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라는 사실을 선포하면 불이익을 당하거나 지위를 잃어버릴 수 있었습니다. 또는 ‘부자 요셉’으로서 쌓아놓았던 부요함을 잃게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라는 사실을 숨겨왔으나 더 이상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라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선언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리고 담대하게 빌라도에게 나왔습니다. 당장은 두려움이나 염려가 앞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예수님의 제자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선언해 보십시오. 여러분에게 기쁨과 감격이, 그리고 주님께서 주시는 축복이 넘칠 것을 믿습니다. 3. 지금부터는 지금도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숨기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요셉처럼 사람들을 무서워하거나 의식하기 때문입니다. 또는 자신에게 불이익이 있을 것을 두려워하거나, 자유롭게 행동할 수 없을 것을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빌라도에게 허락을 받아 예수님의 시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시신을 모셔다가 향료와 함께 삼베로 감고, 바위를 뚫어서 만든 자기의 새 무덤에 모셨습니다. 요셉은 “지금까지” 소극적으로 숨어서 하던 신앙생활을 회개하고 “지금부터는” 새로운 삶을 살기로 작정한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지금부터는” 영원한 것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겠노라는 결코 후회 없는 결단이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