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10월3일]약3:17-18 위로부터 난 지혜
[2004년10월3일]약3:17-18 위로부터 난 지혜 ※ 아래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말씀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www.downchurch.com/recording/20041003.mp3 본문의 앞 구절은 지혜로운 자의 두드러진 특징은 ‘선행’과 ‘온유함’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한 특징을 가진 참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지혜로서 여러 가지 열매를 맺게 됩니다. 야고보는 위로부터 난 지혜가 맺는 일곱 가지 열매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지혜가 위로부터 난 지혜인가, 다음의 기준에 비추어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1. 성결하다. 성결은 더러운 것이 없으며, 오염되지 않고 깨끗한 것을 의미합니다. 참 지혜는 이러한 성결을 낳습니다. 이것은 도덕적 성결을 뜻할 뿐 아니라, 동기에 있어서도 깨끗한 것을 말합니다. 야고보가 ‘성결’을 제일 먼저 이야기할 정도로 ‘성결’은 그 중요성에서 가장 으뜸이 되는 덕목입니다. 2. 화평하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는 이웃을 소외시키거나 이웃에 대하여 악한 생각을 품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본성적으로 시샘을 하거나 시기심을 갖기 쉽습니다. 남들이 잘 되는 모습을 보지 못하여 다투거나, 자기의 본모습보다 낫게 보이기 위하여 허영심으로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가 우리 안에 거할 때, 우리는 이웃의 고통을 덜어주고 치료해주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3. 관용하다. 이 말은 자신의 법적 권리로 생각되는 것들을 빼앗길까봐 악착같이 다투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자신의 권리를 빼앗기는 것을 감수하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라고 판단되는 경우 융통성 있게 그렇게 할 수 있는 자세를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는 묵묵히 받아들이거나 양보할 줄 알며 인내의 열매를 맺습니다. 4. 양순하다. ‘쉽게 설득당하는’의 뜻으로 이 말을 풀이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옳지 않은 일에 대하여 관용하거나 양순한 것은 위로부터 난 지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성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덕목의 조건에는 맞더라도, 다른 덕목들에 위배되는 것은 ‘위로부터 난 지혜’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지혜는 수용성을 넓혀주어 융화적이고 남의 의견을 존중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으면, 하나님의 영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여 마음 문을 열고 가르침을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듭니다. 5.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다. 이것은 어려운 형편에 처한 이웃에 대하여 가지는 느낌을 의미합니다. ‘긍휼’이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태도라면, ‘선한 열매’는 긍휼에서 나오는 행위를 말합니다. 누구나 다른 사람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는 사람을 동정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의 잘못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에게까지 긍휼을 베푸는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지혜입니다. 6. 편벽이 없다. 이 말은 ‘원칙에 충실하다’는 의미입니다. 참 지혜를 기초로 하여 행동하는 사람이라면, 환경에 구애됨이 없이 확고한 성경적 원리에 따라 행동하게 됩니다. 그는 성경적으로 건전한 결정을 내릴 수 있으며, 그 결정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7. 거짓이 없다. 연극에서 서로 다른 두 역할을 하는 배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웃는 모습의 가면을 쓸 때는 관중을 웃기기 위해 유머 있는 대사를 말합니다. 찡그리는 표정의 가면을 쓸 때는 관객들을 슬픔과 비탄에 빠지게 하는 비극적인 대사를 읊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지혜는 가면처럼 모습이 바뀌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이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