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2월15일]마가복음 14:1-11 세 종류의 인생
얼마 전에 우리는 여러 사람을 살인한 사람의 뻔뻔스러운 태도에 어이없어 하였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남이야 어찌 되든 나만 잘 되면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입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신문에 나오는 범죄사건의 주역들을 보면 대개 이러한 종류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숭례문에 불을 지른 사람도 이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겠지요.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어찌하든 손해를 보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곳곳에서 아름다운 이야기들도 들려옵니다. 오늘 본문에는 세 종류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어찌하든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종교지도자들, 그리고 스승을 팔아서라도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 그리고 주님을 위하여 향유를 쏟는 여인. 1. 어찌하든 손해를 안 보려 하는 인생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어떻게 속임수를 써서 예수님을 붙잡아 죽일까를 궁리하고 있었습니다. 정당한 방법으로는 흠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과 헤롯당도 로마 정부에 세금을 바치는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에게서 흠을 잡으려고 했지만 허사였습니다. 사두개인들도 부활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려고 했지만 역시 허사였습니다. 대제사장과 율법학자들은 백성이 소동을 일으킬 것을 두려워하여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명절에는 일을 추진하지도 못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자기들의 권위가 떨어지는 것도 싫고, 그렇다고 무리를 두려워하여 함부로 잡지도 못하는 사람들. 어찌하든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요즈음의 사람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적어도 주님을 믿는 우리들은 달라야겠습니다. 2. 가장 가치 있는 일에 드려지는 인생 베다니에는 나병에 걸렸다가 예수님을 만나 나음을 받은 시몬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집에 머무시며 음식을 잡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노동자들이 일 년을 벌어야 살 수 있는 귀한 향유였습니다. 가룟 유다를 비롯하여 몇 제자들이 “이 향유를 팔아 그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었겠다.”며 그 여자를 나무랐습니다. 그럴 듯한 꾸지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가 예수님께 아름다운 일을 했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우선 예수님에 대한 사랑의 동기가 있었습니다. 또한 이 향유는 예수님의 장례를 위하여 할 일을 미리 한 셈이 되었습니다. 이 여인이 힘을 다하여(아끼지 아니하고 최선을 다하여) 향유를 부은 것을 예수님은 칭찬하시며,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사람들이 이 여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3. 어찌하든 자기 이익을 챙기는 인생 자신의 의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가룟 유다는 분한 마음이 앞섰던 모양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넘겨주려고 대제사장을 찾아갔습니다. 그들은 유다의 말을 듣고 기뻐하며 그에게 은돈을 주기로 약속하였습니다. 그 돈은 당시 노예 하나 값에 지나지 않는 은 삼십이었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넘겨줄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감정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남을 이용하는 것, 남을 희생시키면서 출세하려는 태도, 다른 사람의 감정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 생각만 주장하는 것, 다른 사람에게 생긴 좋은 일을 두고 질투하는 것, 모두가 마찬가지입니다. 벌써 일 년이 지났지만 숭례문 방화사건, 잇단 살인 사건 등의 극단적인 일이 아니더라도 우리 안에 여전히 남아있는 죄의 성품들을 회개하고 가장 가치 있는 일에 드려지려는 다짐이 필요한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