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2월8일]마가복음 12:1-12 기대하시는 하나님

종교란 사람들이 마음의 평안을 위하여 만들어낸 것입니다. 무엇을 깨닫거나, 착하게 살거나, 무엇을 경험하는 일들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종교는, 결국 구원의 책임을 자신에게 묻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사실입니다. 죄를 짓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린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화해의 손길을 내밀고 계십니다. 이 사실을 전달해야 할 책임을 맡은 이스라엘 백성(특히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선지자들을 죽이고 끝내는 예수님까지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도록 한 것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이 사실을 지적하고 계십니다. 1. 맡기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기를 바라시며, 또한 하나님을 증거할 책임을 맡기셨습니다. 그러한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선지자들을 보내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핍박하였습니다. 끝내는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아들마저 십자가에 처형을 하였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그 사실을 지적하시며 특히 종교지도자였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책임을 묻고 계십니다. 2. 계산하시는 하나님 본문의 예화에서 ‘농부’는 이스라엘 백성들(특히 종교지도자)이며, ‘종’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아들’은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는 구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셨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선지자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증거할 책임을 맡겨주신 만큼, 그 책임을 어떻게 수행했는지 계산하시며 책임을 물으십니다. 예화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이제는 복음을 전하는 책임과 특권이 이스라엘로부터 이방민족으로 넘겨지게 되었습니다. 3. 끝까지 기대하시는 하나님 기대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지적을 하거나 책임을 묻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여전히 종교지도자들인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을 기대하시기 때문에 그들 앞에서 이 비유를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인 줄 알고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에게 거추장스러운 존재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강조하는 전통이나 관습을 따르기보다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사람들을 사랑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셨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은 건축자들이 쓰기 좋게 다듬어지지 않은 산돌이셨습니다. 지금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해야 할 책임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우리도 교회의 관습이나 전통에 매이거나 우리의 고정관념에 묶여있게 되면,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이 범한 것과 같은 잘못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거룩한 무리(성도)로 선택하신 이유는 첫째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제자로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또한 아직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여 구원받도록 돕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영혼 구원하여 제자 삼는 교회”라는 표어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를 만들고자 하는 우리의 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영혼들이 구원을 받으며 믿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성숙하도록 돕는 일’은, 우리 먼저 믿은 사람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