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10월12일]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곽우신목사)

최근에 기독교 인구가 줄어들었다는 통계를 보았습니다. 90년대 한국 교회가 최대의 호기를 맞았을 때에 비하면 정말로 최근 교회의 성장세는 멈춘 것처럼 보이며 성장이 아니라 도리어 퇴보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성장하는 교회도 대부분 새롭게 하나님을 믿은 사람들이 많아지기 보다는 이미 믿은 신자들의 수평이동에 의해 성장하는 경우가 많아 보입니다. 교회가 이처럼 생명력을 잃고 멈추어 버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에서 그 이유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믿는 자가 본을 보이지 못함입니다.(6-7절)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모습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고 생명력을 회복하고 교회 다운 교회, 공동체 다운 공동체, 성도 다운 성도로 살기 위한 방법을 살펴보길 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면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편지를 하면서(1절) 그들을 칭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말로만 복음을 받은 자들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을 삶 가운데 실천하고 있던 사람들(5절) 이었습니다. 그들은 믿는 자들의 본(7절)이라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이었을까? 그 비결을 3절에서 바울은 3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1. 믿음의 역사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히 11:1)이라는 성경의 말씀처럼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는 믿음이 실제적으로 역사하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믿음이 믿음 자체로 머물러 있거나 죽어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전파되어지고 믿는 자들이 늘어나며 그들이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역사들이 곳곳에서 나타난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믿음의 역동성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생명력을 얻으려면 곳곳에서 믿음의 역사가 나타나야 합니다. 나 혼자 믿고 있는 것에 지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움직여야 합니다. 2. 사랑의 수고 믿음의 역사가 나타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자격은 ‘사랑함’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냥 사랑이 아니라 사랑함입니다. 즉 사랑의 실천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의 실천에는 수고가 따릅니다. 일부러 시간도 내어야 하고 내 소유의 일부를 나누어주고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음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이런 수고가 따르지 않는 다면 우리의 사랑함은 의미를 갖지 못하며 결국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이끌어 오지 못합니다. 3. 소망의 인내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를 지속시키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때로는 지치고 나의 이기적인 모습이 드러납니다. 하지만 결국 우리가 바라보며 기대하는 소망 때문에 우리는 견딜 수 있으며 기쁨으로 우리의 수고를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여기서 소망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천국에 대한 소망이며 하나님과 함께 함에 대한 소망입니다. 그 소망이 있는 사람은 기꺼이 수고를 감당하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으며 운동력이 있고 오늘날도 믿음의 역사가 나타나며 사랑의 수고가 널리 널리 퍼지는 멋진 것입니다. 영혼을 구원하여 제자삼는 것은 목표나 구호가 아니라 우리의 아름다운 모습이며 성장의 증거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를 따라 변화되어질 다운 교회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