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5월18]사28:1-13가치관을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성경에는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에베소서 5:18)는 말씀이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는 것과 술 취하는 것, 둘 다 사람에게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에 두 가지를 대조하여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같지만 변화한 결과는 전혀 반대의 모습을 가져옵니다. 술에 취한 사람은 판단기준이 흐려집니다. 그러므로 대개 부정을 저지르거나 편법을 쓰려는 사람은 먼저 상대방을 술에 취하도록 만듭니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판단기준이 명확해집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는 식대로 하던 것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인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적당히 넘어가던 일도 하나님이 주신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게 됩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말씀이 결핍되었던 이스라엘과 유다의 모습을 살펴봅니다. 1. 가치관이 흐려진 북 이스라엘 북 왕국을 대표하는 지파인 에브라임에 임할 화는 마치 술 취한 사람이 당하는 화로 나타나 있습니다. 당시에 북 왕국 이스라엘의 땅은 비옥했고 수도 사마리아는 기름진 골짜기가 내려다보이는 곳이었습니다. 그 아름다움으로 인하여 ‘면류관’이라는 칭호가 붙기도 했습니다. 술에 취하면 보이는 것이 없는 것처럼, 사람들은 재물과 외부의 도움에 취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을 거부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취한 자’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들은 만군의 하나님을 영화로운 면류관으로 삼아야 했습니다. 번영한 아름다운 도시가 아니라 하나님이 공경을 받으셔야 했습니다. 재물과 이웃나라의 도움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도움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러지 않은 이스라엘의 영화는 추수하기도 전에 따먹어 버리는 무화과같이 될 것이며, 끝내 포로로 잡혀갈 것을 이사야는 예언하였습니다. 2. 가치관이 흐려진 남 유다 남 유다도 북 이스라엘과 그리 다르지 않았습니다. 남 유다의 종교 지도자와 정치 지도자들도 타락을 하였고, 예루살렘의 거민들도 ‘포도주로 인하여’ 비틀거리며 방종에 빠진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이상을 그릇 풀어 거짓 예언자 노릇을 하였고, 재판할 때에 실수하는 거짓 제사장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을 무시하고 조롱하였습니다. 책망과 경고를 받을 때에는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회개하는 것이 지혜롭고 겸손한 태도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를 조롱하였습니다. “이것은 이러니까 해라, 저것은 저러니까 하지 마라. 이러쿵저러쿵, 어쩌고저쩌고, 우리가 어린 애인 줄 아나봐.” 하며 비웃은 것입니다. 끝내 이사야는 “그들로 가다가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걸리며 잡히게” 하실 것을 선언하였습니다. 3. 가치관을 하나님의 말씀 위에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가 방탕함에 빠진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사야의 ‘가르침’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면 낯선 말을 하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 의해 가르침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는 이스라엘을 정복할 앗수르를 염두에 두고 예언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무엇인가(술뿐만 아니라, 돈이나 명예에 대한 욕심, 개인적 욕망, 음란, 게임이나 인터넷, 또는 게으름)에 취해 있으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가치관을 두기로 먼저 작정하십시오. 그리고 시간을 정해 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섭취하십시오. 설교 듣기, 말씀 읽기, 성경 공부, 성구 암송, 그리고 그 말씀을 묵상하여 삶에 적용하십시오. 그리고 적용한 것들을 모임에서 나누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께 복을 받는 비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