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9일]누가복음 23:32-43십자가 앞에서 변화되려면
누가복음 23:32-43 찬송가 519장(십자가를 질 수 있나) 중한 병에 걸린 사람이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나으려면 크게 세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첫째는 자신이 환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둘째는 수술하는 의사를 신뢰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는 수술대 위에 올라가 수술에 임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첫째,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둘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자신의 죄 문제를 모두 해결해 주실 수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셋째, 이러한 믿음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예수님을 마음속에 구주와 주인으로 모셔 들여야 합니다. 십자가 앞에서 믿음을 고백하고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약속을 들은 강도가 바로 그랬습니다. 1. 십자가를 보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달려 있을 때에 두 강도들도 사형을 당하게 되어 그 좌우에 십자가에 달려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을 위하여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고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처음에는 함께 욕을 했던 두 강도 중의 하나는 이 모습을 보고 마음이 변화되었습니다. 자기는 사형당할 짓을 하였지만, 예수님에게는 죄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같은 십자가를 보면서도 비웃으며 희롱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악을 행하고 십자가에 달려서도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비방하는 강도도 있었습니다. 죄인인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셨다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그 이상 확실한 증거가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는 십자가에서 그 사랑을 보아야 합니다. 2. 십자가를 느끼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들의 죄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계시건만, 군병들은 그 밑에서 예수님이 입으셨던 옷을 차지하기 위해 제비를 뽑고 있었습니다. 십자가를 구경거리로 삼은 백성들도 있었습니다. 관원들은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의 택하신 자 그리스도여든 자기도 구원할지어다.” 하며 비웃었습니다. 군병들과 십자가에 달린 강도까지 예수님을 비방하였습니다. 세상이 끝날 때가 되면 사람들의 마음이 죄와 악에 대하여 감각이 없어질 것입니다.(디모데후서 3:1-5참고) 같은 십자가를 보면서도 자신의 죄를 볼 줄 모르는 사람들, 죄에 대하여 감각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대할 때, 우리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3. 십자가를 고백하는 입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셨지만, 그 옆 십자가에 달린 강도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41절)이었습니다. 게다가 잠시 전까지만 해도 옆에 있는 다른 강도와 함께 예수님을 욕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낀 강도는 갑자기 태도를 바꾸었습니다. 이것은 진정한 용기입니다. 옳은 것을 알고 마음으로 느끼면서도 자기의 이전 모습을 의식하여 말을 못하는 것은 오히려 용기가 없는 것입니다. 진리를 머리로 알고 마음으로 느낀 사람은 의지적인 결단을 내릴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에게 죄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예수님, 주님이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에,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 입으로 주님을 시인하여 낙원을 허락받은 강도처럼, 용기 있는 결단을 통하여 변화를 경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