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12월16일]빌립보서1:19-30복음에 합당한 삶

빌 1:19-30 469장(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다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그 부모에게는 가슴 아픈 일입니다만, 여러 해 전에 우리 교회의 한 아이가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아이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몇 차례를 방문하고 또 장례식을 지켜보면서 한 가지 제 생각이 달라진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6개월 내지 2년 정도 더 살 수 있는 것을 ‘시한부 인생’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 모두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제 경우만 하더라도 아무리 오래 산다 하여도 살아온 날수보다는 남은 날수가 더 짧습니다. 2년을 더 사는 것이나 30년을 더 사는 것이나 기간의 차이일 뿐 시한부 인생을 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 시한부 인생을 살면서 가장 의미 있게 살 수 있는 방법을 본문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1. 바울이 사는 목적: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 우리가 시간이나 돈을 투자할 때에 가장 지혜로운 투자는 이익을 많이 남겨주는 것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인생을 가장 지혜롭게 투자하는 투자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영원한 것에 우리의 인생을 투자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사람들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영원하신 성자 하나님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일을 가장 간절히 기대하고 소망하였습니다. 한 가정에서도 가장의 이름을 빛내는 것은 가정과 가족 전체를 빛내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장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감옥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살아도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고 죽어도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냄으로써 그리스도가 높임을 받으시는 것에 드려지는 것이 자신이 사는 목적이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2. 죽는 것도 유익하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죽음을 끝나는 것으로 생각하고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죽음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되는 관문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여행을 가서 며칠 동안 텐트를 치고 살던 사람들이 든든하고 안락한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텐트를 걷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본향집에 가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 위해서는 우리의 장막집인 몸에서 떠나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죽음입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육신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을 원하고 또 그것을 훨씬 더 좋게 여겼습니다. 실제적으로 이 세상에서 받는 고통, 질병으로 인한 고통, 이별의 고통, 사업의 어려움, 자녀교육의 고민, 이 세상의 모든 고민으로부터 떠나는 것이 바로 죽음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되니 죽는 것도 유익한 일입니다. 3. 사는 것도 유익하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살아있어야 사람들에게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영원한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그들의 믿음을 진보시키고 기쁨을 더해줄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아는 바울은 갈등이 생겼습니다.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과 성도들의 믿음을 도와주고 싶은 두 욕망 사이에 끼인 것입니다. 천국에 대해 이 정도의 믿음이 있다면 그리스도인에게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을 것입니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기쁨과 평강과 소망이 넘칠 것입니다. 어떤 일에도 다툼이 없을 것입니다. 교회의 일치와 협력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 세상에 조금 더 낫게 살려는 일에 목숨을 걸지 않을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일, 가장 의미 있는 일을 위하여 우리의 값진 시간을 멋있게 사용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