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5월20일]여호수아 22:10-34 아름다운 공동체

여호수아 22:10-34 찬송가 278장(사랑하는 주님 앞에) “내 뱃속에서 나왔고 내가 기른 자식인데도, 자식이 부모 마음을 저렇게 모를 수 있을까?” 하는 말을 가끔 듣습니다. 같은 이불 속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부부 사이에도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많습니다. 심지어 “내 마음 나도 모른다.”는 말도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수십 년을 살아온 부부 사이에도, 심지어 자신도 자신의 마음을 모를 수 있는데,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 안에 오해와 갈등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차지하기 위해 함께 전쟁을 하며 수고해온 이스라엘 민족이었지만, 그들 가운데 오해와 갈등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형제애를 가지고 상황을 먼저 파악했고 해명을 하는 과정을 통해서 다시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1. 본질적인 문제에는 일치를 가나안 땅에 대한 분배가 끝난 후,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가 이스라엘 자손을 떠나 자기들이 기업으로 얻은 땅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 요단 언덕가에 이르자 볼만하게 커다란 단을 쌓았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 소식을 듣자 곧 그들과 싸우러 가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지혜롭게 먼저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사람을 보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렇게 행동했던 이유는, 그들이 단을 쌓은 목적이 우상숭배인 것으로 오해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너희 소유지가 만일 깨끗지 아니하거든 여호와의 성막이 있는 여호와의 소유지로 건너와 우리 중에서 소유를 취할 것이니라.” 하고 제안을 할 정도로 사랑 가운데 세 지파가 죄를 짓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께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만을 경배하는 본질적인 문제에는 일치(순종)를 추구하는 것이 옳습니다. 2. 비본질적인 문제에는 다양성을 세 지파가 단을 쌓은 일에 대하여 오해를 당하고 꾸지람을 들었지만, 그들은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아니하고 자신들이 한 일에 대해 자세히 해명을 하였습니다. 그들이 단을 쌓은 것은, 하나님을 좇지 않거나 우상숭배의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요단강으로 땅의 경계선이 그어져 있기 때문에, 후에 이스라엘 후손들이 세 지파에 대해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사람 취급을 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요단강으로 땅의 경계선은 나뉘었지만, 실제로 신앙의 경계선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세 지파 사람들은 이스라엘 후손이나 자기들의 후손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동일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 교회 안에도 비본질적인 문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다양성을 인정하는 넓은 마음이 필요합니다. 3. 모든 일에 사랑을 제사장과 방백들이 가나안 땅으로 돌아와 세 지파의 진정한 의도를 전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바른 신앙을 가지고 있는 그들에 대한 소식은 이스라엘 자손을 즐겁게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찬송하고 세 지파 사람들과 싸우자는 말을 다시 하지 않았습니다. 세 지파는 그 단을 ‘엣’이라고 이름하였습니다. 그 이름은 ‘우리 사이에 이 단은 여호와께서 하나님이 되시는 증거’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동일하게 아버지로 모시고 있는 교회 안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목표 중심인 사람, 사람 중심인 사람. 주도적이서 빠른 사람, 반응적이어서 느린 사람. 게다가 자라면서 받은 상처나 온갖 경험들로 인해 민감한 영역들도 얼마나 다양한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