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5월13일]여호수아18:1-10달리는 자전거는 넘어지지 않습니다
어릴 때 팽이를 돌려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빠른 속도로 도는 팽이는 여간해서 쓰러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돌아가는 속도가 느려진 팽이는 곧 쓰러지고 맙니다. 자전거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지해 있는 자전거에 앉아 쓰러지지 않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그와 같은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간혹 “요즈음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십니까?” 하고 물으면, “현상유지는 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현상유지는 괜찮은 상태가 아니라, 위험하고 부끄러운 상태입니다. 1. 달리지 않는 자전거는 쓰러지기 쉽습니다. 여호수아와 함께 약속의 땅으로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땅을 차지하고 분배하였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그 기업의 분배를 얻지 못한 지파가 일곱이나 있었습니다. 그 이유를 3절에서 명백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땅을 취하러 가기를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 여호수아의 꾸지람을 보면 분명 그들에게 약속의 땅을 취하고자 하는 열심이 없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도 그와 같습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와 같아서 우리가 주님과 긴밀한 관계 가운데 있으면 많은 열매를 맺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고, 우리는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역의 열매를 맺는 일이나, 성품의 열매를 맺는 일에 열의가 없으면 열매를 맺지 못하는 부끄러운 가지가 되고 맙니다. 2. 달리는 자전거는 쓰러지지 않습니다. 여호수아는 기업 분배를 받지 못한 지파를 불렀습니다. 매 지파에 세 사람씩 선정을 하여 그 땅을 두루 다니며 그 기업에 상당하게 그려가지고 돌아오라고 지시했습니다. 공동체 안에는 갈렙과 같이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하며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하는 갈렙이 있습니다. 반면에 뒤에서 등을 밀기 전에는 움직이기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현상유지’라는 말이 그럴 듯하게 들리지만, 특히 신앙의 현상유지는 결국은 신앙의 퇴보를 불러옵니다. 지도자의 역할 중의 하나는 공동체의 신앙을 일으켜 세워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소원을 품고 행하도록’(빌립보서 2:13) 도와주는 일입니다. 내가 구원받은 것으로 만족하고 머물러 있다면 그것은 반쪽 신앙생활입니다. 주님을 닮아가고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를 위해 우리는 계속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3. 그러나 때로는 멈춰야 할 때도 있습니다. 레위 사람은 하나님의 제사장 직분 자체가 그들의 기업이기 때문에 분깃이 따로 없었습니다. 그들은 언약궤와 성막을 운반하고 제사를 돕는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의 기업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각 지파들은 레위인들이 거할 성읍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일용할 것들을 날마다 공급받는 복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헌신한 사람들은 구약의 레위인과 같이 살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일에 전념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도 때로는 달리던 길을 멈추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길을 가기 전에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뜻을 물을 줄 알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