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10월22일]나훔1:7 나의 산성 되시는 하나님

나훔서가 기록된 것은 요나의 외침으로 말미암아 니느웨 성이 티끌과 재를 쓰고 회개한 지 150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그들은 요나의 외침을 들었을 때 진심으로 회개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회개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전에 회개한 그 죄를 다시 짓고 있었습니다. 앗수르의 영광이었던 니느웨 성은 단순히 타락한 것만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고의적으로 거역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죄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심판자로서 그러한 니느웨를 향하여 투기하시고, 보복하시고, 격노하시고, 진노하시고, 크신 권능으로 악인을 사하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와는 대조적인 하나님의 성품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아버지로서 선하시고 환난 날에 산성이시며, 그를 의뢰하는 자를 아시는 분입니다. 1. 하나님은 선하시다.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는 나훔 당시에 세계적인 대도시였습니다. 소선지자인 요나와 나훔이 특별히 니느웨에 대해 예언한 것은 흥미로운 일입니다. 요나가 그들에게 말씀을 선포하고 난 뒤 150년 후에 그들은 다시 더 깊은 죄악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죄를 미워하시며 죄에는 심판을 내리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동시에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선한 목자 되신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먹이십니다. 선한 목자가 양떼들을 위하여 가장 좋은 푸른 초장으로 안내해 주고 목이 마를 때에는 물가로 인도해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 우리는 다윗과 같이 노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하나님은 환난 날에 산성이시다. 니느웨는 심은 대로 거두어야 했습니다. 그 성벽은 높이가 30m나 되었습니다. 그 성벽 위로 큰 수레가 넷이 달릴 수 있을 정도로 넓었습니다. 니느웨는 하나님 없이도 살 만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그 높은 성벽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오직 하나님만이 환난 날에 산성이 되십니다. 하나님께서 때로는 우리에게 환난을 허락하십니다. 환난을 통하여 우리를 겸손하게도 하시고 믿음을 단련하기도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을 테스트하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우리에게 환난을 허락하실 때에 그것을 이길 힘도 우리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윗과 같이 노래할 수 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3. 자기에게 의뢰하는 자들을 아신다. 니느웨는 하나님께 등을 돌리는 모든 나라들을 대표한 배반국의 모형입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에 있어서도 문명국의 자만은 인간의 힘과 기술을 앞세워 하나님을 경시하고 있습니다. 니느웨는 결국 그들의 죄로 말미암아 내던져졌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니느웨 성의 부와 힘으로도 그 성읍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흔히 세상 나라들은 그들의 힘과 세력에 의지하여 다시 일어나 보려고 합니다. 그들은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는 말씀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에게 의뢰하는 자들을 아시고 그들을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이 사실을 아는 다윗이 노래했던 것처럼, 우리도 노래합시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